|
|
|
삶이란 무엇인가?
Posted: 2009-09-20 By: 박왕춘 (Views:1569)
신을 믿는 이들이 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죽음 이후에 맞이할 영원한 삶에 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이며, 그 진리에 충실 하는 것 만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며, 그런 삶을 살아가려 애 쓰는 것이 올바른 삶인 것이다.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자신이 스스로 ‘나’ 혹은 '자신' 이라고 여기는 존재, 바로 그 존재의 기원이나 의미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이들은 우주를 본다. 수 없이 명멸하는 별빛 속에서 자신과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재한다라고 느끼게 해주며 생각하도록 만들어주는 살아있는 자기 자신의 육체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영혼과 분리할 수 없는 바로 그 육체, 그것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생각은 육체와 생각을 만들어내고 존재하게 해주는 정자와 난자 유전자 그 모든 세포 구성물질에 대한 생각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 구성물질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가 서 있는 이 지구에서 온 것이다. 지구의 구성물질과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구성물질이 우리 몸에 단 한가지라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지구는 어디서 왔는가? 잘 모르겠다. 과학자들은 우주먼지가 뭉치며 결국 빅뱅이 일어나서 현재의 모습으로 우주가 팽창하며 생성 발전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아직까지는 가능한 가장 과학적 설명이며 논리적인 답안이다. 결국 그 과정에서 태양계가 생겨났고 태양계의 한 행성인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이 구성이 되어 생명체가 생겨났고 진화과정을 거쳐 인류가 생겨났고 그 인류 중 한 사람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가장 설득력 있고 납득 가능한 답안이다. 그럼 우주먼지는 어디서 왔는가? ...... 그건 설명하기 더 곤란해 진다.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거기 있었다 가 정답일 것이다. 여기서 믿는 이들은 하나님(신)이 만들었다 라고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다 라고 말한다. 무엇은 무엇이 만들고 그 무엇은 또 어떤 무엇이 만들고 식의 계속적인 논리를 펴다가 하나님은 그럼 누가 만들고 에서는 딱 닫아버린다. 계속적인 그 논리 앞에서는 그 어떤 답을 내 놓아도 결코 최종 답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그 논리놀음은 마지막 답이 나올 수 없게 되어 있다. 그것이 그 논리놀음의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그 논리놀음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논리에 예외가 된다고 규정해 놓은 신이란 존재를 내세우거나 모른다 라고 답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그 마지막 답은 신 아니면 모른다 이다. 믿는 이들이 여기서 신 쪽을 선택했다면 다른 이들은 모른다 를 선택한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둘의 가치는 똑 같다. 단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 이는 딸기를 더 좋아하고 어떤 이는 사과를 더 좋아한다고 할 때 그 중 누가 맞는다고 어느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삶은 어차피 유한하고 개별적인 것이다. 개개인의 유전적 후천적 환경이 다른 만큼이나 성격 취향 관심사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누가 어떤 선택을 하건 다른 사람이 그 선택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바꿔 놓으려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껏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은 왜 그 쪽을 선택하였다 하는 이유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어떤 이는 그냥 그것이 좋아서 신을 선택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모른다가 더 맞는 거 같아서 그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주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변함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점이다. 우리가 속한 우주 자체가 생성소멸을 반복하고 그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생성 변화 소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걸 믿는다. 초등학교 1학년쯤 이라고 기억하는데 밤에 옥상에서 별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죽음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 언젠가 나 자신과 가족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었다. 그때의 그 섬뜩함이란… 정말 너무나 슬프고 허무해서 가슴이 저리고 아득했다. 암만 생각해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엄청나고도 막막한 벽에 봉착했던 것이다. 신을 선택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이 딜레마를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죽은 후에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이다. 나도 솔직히 영원히 살고 싶다. 나도 아주 가끔은 죽음이 두렵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을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니… 암만 생각해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딜레마인 죽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종교… 그것 하나만으로도 종교가 지닌 위력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나는 진리는 반드시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원히 살아남고 싶은 본성과 욕망에서 그것이 반드시 진리임을 믿고 싶은 것이, 더 나아가 확실히 진리라고 믿게 되는 것이 인간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의 탄생과 존재의 기반이 되는 우리가 속한 우주를 보라.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생성과 소멸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생성 소멸의 반복 과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존재라는 것은 단지 그 과정 중의 일부에 속할 뿐이다. 유한한 생명의 인간 또한 그 과정의 일부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우주의 질서가 이러한데 왜 인간만 영원히 살아남아야 하는가? 영원히 살아남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희망사항은 희망사항일 뿐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간이 애써 외면하려는 건 아닌지... 우주를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 이라는 확신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다. 정말 받아들이기 싫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질서가 진리 일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안 해보았는가? 행여 안 하려고 일부러 외면하고 있던 것은 것은 아니었던가? 아내와 아이가 교회에 다닐 때 예배 후의 다과회 자리에 잠시 합석하게 된 적이 있다. 아이가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아저씨에게 했던 질문이 생각이 난다. 믿음이 뭐예요? 신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치고는 황당하리만큼 근본적이고 초보적인 질문이었다. 그런데 의의로 막상 말로 설명하기엔 결코 쉽지 않은 깊은 질문이었음을,순간 당황해하며 비슷한 단어로 궁색하게 뭐라고 대답하는 그 분의 표정에서 읽었다. 물론 그 분도 교회에 다닌 지 몇 년 안된 분이긴 하지만 지적이고 배울 만큼 배우신 분이시기에 분명 뜻은 알고 계셨으리라 믿는다. 다만 순간적으로 쉽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난감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 무얼까?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일일까 하고…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일체의 의심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런 것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일체의 의심이나 두려움이 없는 완전한 받아들임은 편안함을 줄 것이다. 내 심장이나 내 마음이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그런 사람은 없듯이, 그 정도로 그렇게 완전히 내 마음 속에 무엇인가가 완전히 자리잡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더욱이 마음에 받아들인 그 대상이란 것이 절대적 힘과 능력을 지닌 그런 존재였을 경우를 말이다. 어쩌면 그 대상이 정말로 절대적 힘을 지녔는지 아닌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아예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자신 내 마음 속에 그 무언가가 그런 절대적 존재로 흔들림 없이 자리잡고 있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믿음의 문제를 그렇게 보았다. 지구상에는 수 많은 갖가지 종교가 존재를 한다. 거의 모든 종교가 따지고 들어가보면 하나같이 모순점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는 참진리가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종교를 진리라 믿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서 힘과 용기와 위안을 얻으며 내세를 염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이 지닌 이런 속성 때문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믿음인 것이다. 그 믿음의 대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진리나 철학이 될 수도, 어떤 이에게는 예슐이나 사상이 될 수도, 어떤 이에게는 인류애나 인류의 구원을 위한 소망이 될 수도, 어떤 이에게는 각별한 개별적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선택은 개개인의 유전자나 기질, 살아온 환경과 운명, 그리고 의지에 달린 것이다. 분명한 건 어떤 종류의 믿음이 되었건 마음 속에 이처럼 굳건한 믿음을 지닌 이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평안과 능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두려움 없는 삶을 살면서 무언가를 이루어낸 이들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여지없이 이런 의미로서의 굳건한 믿음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바다와 산처럼 깊고 높은 믿음을 가지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는 이들이었다. 바다와 산의 깊고 높음이 이미 그들의 마음으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수 없이 많은 종교들마다 나름대로의 수 많은 기적들이나 성인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과, 일체의 종교와 무관한 삶을 살면서도 평안과 능력의 삶을 살다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매주 교회나 절에 나가는 이들 중에서도 두려움이나 악으로 가득찬 이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결국 믿음이란 인간 개인의 마음 속에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자리 잡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이지 결코 특정 종교나 신이 그 믿음의 대상이어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워 종교에 매달리는 자들 보다는 오히려 죽음 조차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들이 두려움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은 신의 종이 되고자 두려움이나 속죄의 시간으로 이 짧고 소중한 삶을 허비하지는 않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존재의 의미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자유의지라는 것도 어쩌면 어떤 믿음을 가슴에 품느냐 또한 얼마나 절대적으로 품을 수 있느냐의 선택과 받아들임 이라는 두가지 문제가 그 핵심일지 모른다. 사람은 사람마다 스스로 감당하는 범위가 다르다. 따라서 내가 진리라 생각하지 않는 종교라 해도 어떤 이들에게 그것이 유일한 위안이며 해결책일 수도 있는 것이며 내가 싫어하는 대상을 다른 이들이 믿음의 대상으로 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삶에 목적을 부여하는 종교적 삶이 나는 진리라 생각치 않지만 다른 누군가는 절대적 진리라 여길 수 도 있으리라. 어차피 인생은 개별적인 삶이며 스스로의 주인은 자신이며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삶인 것이다. 다만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한가지는 그 모든 믿음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닌 존엄성, 잠재능력 그리고 타고난 천운에 대한 절대적 믿음 말이다. ---- 계속 됩니다 ---- |
|
|
| 삶이란 무엇인가? | 박왕춘 | 1569 | |
| Re.. 글쎄요...하지만... | 김용 | 1151 | |
| Re.. 이모님 이야기 | 박왕춘 | 596 | |
| Re.. 철학적 대화 | 1945년의 망령 | 2371 | |
| Re..GOD'S CREATION, TITHES, HUMAN BEHAVIOR, SALVATION, GAYS ETC. | gh | 931 | |
| Re.. 빛과 어둠에 대하여 | 철학 좋아 | 1015 | |

Book Review





